보컬재즈
보컬재즈로 알려진 스타일이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유명한 보컬리스트의 거의 대부분은 재즈풍으로 공연을 했
다.
Russ Columbo에서 Doris Day, Johnny Mathis에 이르는 유능하면
서 보컬 파워가 있었던 재즈보컬 아티스트들은 유명한 재즈연주자
들과 같은 기준의 재즈 스타일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 그들은 연주에
있어 보다 즉흥적 연주 애드립과 화음의조화, 그리고 개인기량에 있
어서도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 줄 특별한것을 갈망했다.
한쌍의 위대한 거장인 Louis Armstrong 과 Bing Crosby는 그러한
갈망을 한층 높여 특유의 보컬재즈 스탠다드의 범위를 기록했다.
Frank Sinatra, Billie Holiday, Ella Fitzgerald, Mel Torm,
Anita O"Day, Sarah Vaughan, Peggy Lee, Joe Williams 등의 매
우 유명한 메이저급 재즈 보컬리스트들은 빅밴드 출신들이 많다. 이
들 모두는 스윙밴드에서 오랜시간 몸담아 왔었고, 전성기에 들어서
성공적인 메이저 가수들이 되었다.
비록 재즈 보컬리스트들이 전통적인 팝 가수들과 다를바 없게 여겨
졌지만, 재즈 솔로들의 퍼포먼스또는 스캣과 같은 그들만의 애드립
요소로 재즈보컬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들은 보통 무명의 오케스트라나 일반적 팝 스타일의 분위기 보다
는 유능한 편곡자들(Nelson Riddle, Billy May)과 작곡가들(Irving
Berlin, Cole Porter, the Gershwins)의 곡들을 좋아했다.
40년대와 50년대 재즈 보컬리스트들은 스윙의 개념에 포괄되었지
만, 포스트 밥 가수들은 그들만의 보컬실험성과 함께 재즈 연주자의
탐구적 솔로와 광기어린 리드미컬 템포들로 설명하고 있었다.
Lambert, Hendricks & Ross는 Betty Carter, Mark Murphy, 그리
고 Abbey Lincoln을 포함해서 실험적인 편곡들과 급변형시키는 코
드들, 그리고 많은 즉흥연주 요소들에 빠졌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재즈 보컬리스트들은 주춤했었지만, 오늘
날에도 재즈보컬 스타일은 계속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재즈 보컬 아티스트로는 그래미 시상식에 다부분 노미네
이트 되었던 노라존스(Norah Jones)를 비롯하여 Billie Holiday,
Natalie Cole, Ella Fitzgerald, Diana Krall, Nat King Cole, Julie
London, Chie Ayado, Sarah Vaughan, Harry Connick Jr. ,
Annie Haslam, Tony Bennett, Nina Simone, Marvin Gaye,
Marilyn Monroe와 우리나라의 윤희정, 정말로, 김현정, 나윤선,
임경아 등의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들 수 있다.
스윙재즈
스윙(Swing)이란 단어에는 "흔들리다, 흔들거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스윙곡을 듣게 되면 섹스폰과 브라스의 경쾌한 리듬
이 주류이기에 듣는이로 하여금 율동감을 느끼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스윙 재즈는 4박자 비트를 [One! And Two! And Three! And
Four! And] 으로 구성되어 4박자 비트에 (And)라는 박자가 들어
간 "Off-beat"로 탄력있는 비트감에 발전된 리듬을 의미한다.
스윙음악에맞추어 추는 춤의 종류로는 지터벅, 린디홉, 새그,
발보아,자이브, 밥, 윕등의 춤이 있었으며, 스윙 리듬을 이용한 6박
과 8박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 이런 비트감을 리듬에 맞춰 90년대
댄스열풍에 큰인기를 끌었다.
스윙 재즈가 나타난 시기는 1920년 말부터이지만 세계공황을
겪은 뒤로다시 스윙 재즈는 주춤하게 되었다. 이런시기에 클라리넷
연주자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에 의해 다시 "스윙시대"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스윙 리듬은 이후 재즈적인
전형으로 발전되면서 재즈를 만들어 내는 리듬패턴의 중요한 스타
일로 자리를 잡아갔다. 점점 스윙팬이 늘어나면서 스윙 음악을 진지
하게 배우려하는 시대적 젊은층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잡지 등 재즈 저널리즘이 곳곳 에서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스윙 재즈는 박자에 따른 액센트를 주는 부분을 다른 재즈풍의
자유스러움과는 달리 짜여진 곡풍에 맞게 많은 인원의 연주자들을
연습시켜야 했기에 빅밴드 스타일이 많으며, 그만큼 화려한 재즈
애드립은 솔로나 소화할 수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 단점인지도
모른다. 즉흥적인 연주는 고사하고 밴드 인원에 맞는 화성과
조화에만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스윙 재즈의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베니 굿맨(Benny Goodman,
클라리넷),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피아노), 카운트 베씨
(Count Basie, 피아노), 엘라 핏츠제랄드(Ella Fitzgerald,가수)
와 빌리 홀리데이(Billy Holyday,가수), 해리 제임스(Harry James,
트럼펫)와 로이 엘드리지 (Roy Eldridge,트럼펫), 콜맨 호킨스
(Coleman Hawkins,색소폰)와 레스터 영(Lester Young,색소폰),
글렌 밀러(Glen n Miller,트롬본),
테디 윌슨(Teddy Wilson,피아노)과 아트 타툼(Art Tatum,피아노)
, 진쿠르파(Gene Krupa,드럼) 등의 뮤지션을 들수 있다.
뉴올리언스재즈
뉴 올리언즈 크레올 재즈는 금세기 초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 올리언
즈(New Orleans)에 있는 홍등가 스토리빌에서 태어났다. 원래 흑
인 노동자와 노예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Work Song(노동요)과
Negro Spirituals(흑인영가), gospel(복음성가), 장송곡등과 서양
음악이 융화되어 뉴 올리언즈 전통 브라스 밴드와 융화되어 탄생
되었는데 여기에는 뉴 올리언즈에 거주하던 크레올(Creole)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역사학자들은 한참 노예 사냥이 전성기일 무렵 약 1만여명의 흑인이
신대륙으로 잡혀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에 일부는 백인과 결
혼해서 혼혈을 낳기도 하고 그들 중에서 유럽의 교육을 받아 문명의
혜택을 받는 혼혈 계층이 나타난다.
바로 이들을 크레올 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프리카 흑인과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백인과의 사이에서 생긴 인종으로 재즈를 탄생시킨
종족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 초창기에 남부지방을 프랑스가 점령했던 것은 사실.바
로 이지역에 당연히 크레올이 몰려 있었고 그다지 인종차별이 없었
던 프랑스였기에 크레올중에는 유럽에 건너가 고급 교육을 받은 사
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전쟁이후, 크레올들이 고등 교육을
받은 사실을 모르는 북부인들은 무조건 피부색을 따져서 당시 그들
을 흑인취급을 했는데, 갑자기 변화된 그들의 대접에 크레올들은 상
실감에 빠져 거리와 술집 등으로 나오게 되고, 자신들의 애환을 음악
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유럽에서 공부한 여러 장르의 음
악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와 브라스를 연주 했던것이 바로 재즈의 시
작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남부의 흑인 중에서 크레올은 거의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인텔리였던 것이다. 19세기 말의 뉴올리언즈는 유럽과의 교
역으로 흥청대던 항구도시였고, 크레올 또한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재즈라는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재즈는 정확히 말하면 크
레올이란 인종이 자신들의 흑인 음악과 유럽 음악 그리고 여기저기
에서 건너온 각 나라의음악을 혼합시켜 연주했던 장르인 것이다.
뉴올리언즈(New Orleans)는 미국의 영토가 되기 전에는 프랑스의
땅이었으며 프랑스 당국자들은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 태어
난 혼혈아 들을 크레올이라 부르며 흑인신분에서 해방시켰다. 이들
은 다른 노예들과 다르게 흑인 특유의 음악과 필링을 갖고 있으며
또한 유럽적인 체계적이고 고급스런 음악교육도받았다.
뉴 올리언즈의 크레올들은 흑인음악의 특성을 유럽적인 전음계 기
악 형식 으로 표현하는 초기 재즈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한편, 1910년대부터 1920년대에는 남부로부터 북부의 공업 도시(시
카고의사우스 사이드)로 취업을 하기 위해 다수의 인구가 이주하였
는데 이때 유능한 재즈 팬들도 시카고로 이주하여 연주 생활을 하기
에 이르렀다. 이때를 비유하여 재즈사에서는 ‘재즈 엑소더스’라고 말
하기도 한다.
초기에는 루이 암스트롱을 중심으로 브라스 밴드에서 탈피하여 솔
로 연주를 도입하는 새로운 재즈가 확립되었다. 이를 뉴올리언즈 재
즈 ; 혹은 ;딕시랜드 재즈 스타일이라고 분류하는데 재즈사상 최초의
레코딩은 1917년에 녹음된 ODJB(Original Dixieland Jazz Band)이
었다. 이러한 백인 그룹의 역사적 녹음을 시작으로 시드니 베셰와
쟈니 도즈 형제의 레코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선배인 킹 올리버(Joe
King Oliver)의 명연이 녹음 된다. 전설적인 뉴 올리언즈 스타일의
명연주자 벙크 죤슨의 연주도 이런 환경에서 녹음되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의 녹음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찌되었던 재즈는 탄생
되었다.
그러나 1917년 이전의 재즈의 녹음이나 재즈에 관해서 쓰여진 구체
적인 자료는 전무한 편이다. 그러나 40년대에 들어서 전술한 트럼펫
의 명인벙크 죤슨을 찾아내어 당시 재즈 스타일을 알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기라성 같은 백인 트럼펫티스트 제리 롤 모턴,흑인 토마스
‘팻츠’ 윌러, 스카트 죠플린(Scott Jopkin), 제임스 프라이 죤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뮤지션이 명멸해 갔다.
특히 이때의 파이노 스타일을 스트라이드 내지는 랙타임(Rag time)
이라고 하여 한 시절을 풍미하기도 했다. 킹 올리버 악단의 활약으로
재즈는 미국 각지에 넓게 확산도어 나갔으며 그 중에서도 희대의 엔
터테이너 루이암스트롱은 20년대를 통하여 뉴올리언즈에서 시카고
와 뉴욕으로 진출하여 대 활약했으며 그 지역에 재즈의 뿌리를 내리
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20년대 말과 30년대 초까지 이끌어 왔던 밴드 "Hot five" 와 "Hot
Seven" 은 뉴 올리언즈 재즈 초기의 최대 성과로서 오늘날에도 크게
호평을 받고 있다. 결국 루이를 추앙하는 재즈 아티스트들에게 원형
이 되었고 현재 전 세계적인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재즈와 고전음악
의 기린아윈튼 마샬리스도 루이 암스트롱에 그 원류를 찾을 수 있다.
뉴 올리언즈 재즈의 스타일을 살펴보면, 세컨드 라인으로 베이스 라
인과 리듬이 특징이며 거기에 브라스 밴드의 앙상블이 가미되어 한
층 더 감흥을 일으키고 있다. 이때 사용된 악기들은 트럼펫(Trumpe
t) 또는 코넷, 클라리넷(Clarinet), 트럼본(Trom bone), 튜바, 드럼
(Drum), 벤죠(Banjo), 더블 베이스(Double Bass), 피아노 등이며
중량이나 크기문제로 거리나 페레이드에서 연주할 때는 피아노가
빠지는게 상식화되었다.
한편 루이 암스트롱 밴드와 더불어 20년대를 대표하는 악단은 제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 1890 - 1941)의 ‘레드 핫 페퍼즈 (Red
Hot Pepper)’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루이 암스트롱 밴드가 솔로를
중시하여 재즈에 솔로 개념을 도입했다면 제리 롤 코턴 그룹은 뉴
올리언즈 재즈의 집단 즉흥연주를 발전시켜 긴밀한 그룹 표현의 전
형을 제시하였다.
라틴재즈
재즈라는 말은 1910년대 흑인들의 소편성 악단을 가르켜 부르던 말
에서 유래했다고들 한다. 이는 미국의 팝시장에 들어와 반영한 연주
스타일의 흐름으로 자리 잡으면서 재즈라는 장르의 크기는 팝시장에
서 거대해지 기 시작했다.
전반적 스윙스타일의 라틴재즈는 가장 파퓰러한 장르이다.
퍼커션과 쿠반 리듬이 강조된 댄스적이고 쉬운 리듬형식의 음악이
다. 라틴 재즈는 재즈 퍼커션과 전통적 밥 재즈가 혼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1940년 이 두 스타일을 잘 혼합하여 폭발적 인기로 선구한 것은
빅밴드 시대에 Dizzy Gillespie and Machito 등의 빅밴드들에 의해
서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Tito Puente 와 Poncho Sanchez 등의 빅밴드
들에 의해 자극적이면서도 강한리드미컬한 음색으로 각인을 시켜놓
았다.
이러한 음악형식은 라틴 재즈를 지난 40년 동안 변하지 않고 유지시
켰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스타일로 라틴재즈를 정착하게 되
었다 할 것이다. 라틴 재즈는 때때로 Mario Bauza 와 Ray Barretto
가 주도 했던 Afro Cuban jazz 로도 불리운다.
스탠다드재즈
미국의 파퓰러 음악의 황금기시대에 몇몇의 매우 독창적인 작곡가
들은 셀수없이 많은 듣기쉬운 곡들을 썼는데, 이러한 곡들은 창의적
인 재즈 뮤지션과 싱어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Body and Soul," "Stardust," 와 "All the Things You Are"를 포함
하여 수많은 이러한 곡들은 종종 브로드웨이 쇼나 헐리우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여졌다.
Jerome Kern, Irving Berlin, George Gershwin, Harold Arlen,
Hoagy Carmichael, Cole Porter, Richard Rodgers, Harry Warren,
Fats Waller, 그리고 Duke Ellington과 같은 아티스트들은 끝없이
쏟아지는 보석처럼 재즈와 팝음악을 세계에 전파시켰다.
Standards(스탠다드)라 불리는 노래들은 반짝하고 사라지는 듣기
편한 "originals" 한 음악과는 다르다.
락의 성장기에 세계의 팝음악은 풍부한 재즈 화성과 리듬감을 도입
하면서 더많이 발전하게 되었다.
비록 많은 "Old Standards"한 음악들은 1960년대 이래로 오리지널
한 음악소스를 믿고 의지했었던 재지 뮤지션들과 싱어들에 의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퓨전재즈1970년대에 들어와 재즈계는 많은 변혁을 맞이한다. 아니, 그 흐름
은 이미 60년대 말에 예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1950년대 중반
, 록 음악이 탄생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은 온통 록 음악으로 향해
있었다.
그에 따라 재즈의 인기는 서서히 하락했으며 60년대말 에는 그 형
편이 말이 아닐정도였다. 이에 따라 록 음악을 재즈와 결합시키려
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이를 퓨전 재즈라 부르는데, 한 마디로 재즈에다가 록 음악의 비트
와 각종 전자악기가 가미되어 듣기에 흥겹고 또 기교가 빼어난
재즈가 탄생된 것이다.
당초 이 퓨전 재즈는 영국 쪽에서 시작했다.
특히 존 맥러플린이란 기타리스트가 발표한 "Extrapolation"은 퓨
전의 여명을 알리는 걸작으로 지금도 추앙 받고 있다. 그러나 본
격적인 움직임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라 하겠다.
이 음반에 의해 공식적으로 퓨전 재즈는 출범하게 된다.
한편 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나중에 독립해서 70년대를 주
름잡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그 중요인물들을 논하자면 칙
코리아, 허비 행콕, 웨인 쇼터, 존맥러플린 등이다.
칙 코리아는 리턴 투 포에버라는 그룹을 이끌면서 남미적인 감각
을 퓨전재즈에 혼합한 인물이다.
이런 그의 궤적은 "Light As a Feather", "Return to Forever" 등
의음반으로 추적할 수 있다. 허비 행콕 역시 "Headhunters" 같은
밀리온 셀러 음반으로 퓨전 재즈의 인기몰이를 했다.
그러나 그룹 차원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웨인 쇼터가 중심이 된
웨더 리포트와 존 맥러플린이 조직한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다.
전자는 "Heavy Weather" 같은 음반으로, 후자는 "Bird of Fire"
같은 음반으로 각각의 베스트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퓨전쪽
음반은 현란한 기교에다가 전자음악까지 가세한 화려한 음의
향연 때문에 듣기에 좀 피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도 재즈
의 한 모습이라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
다.
한편 이 움직임은 80년대에 GRP 레이블을 중심으로 보다 감상에
용이한 쪽으로 움직임이 확장된다. 그 중에서 데이브그루신, 리
리트너 등은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라 하겠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퓨전 재즈가 재즈의 진면목을 보여줬다고 말
하기엔 뭐한 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80년대에 들어오면 오히려
재즈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며 그 중심엔 윈턴
마살리스라는 트럼페터가 존재한다.
그가 추구하는 모토는 아주 간단하다. 50년대 모던 재즈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신전통주의"로 명명되기도 한다.
여기엔 그와 그의형 브랜포드 마살리스, 마커스 로버츠 등 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음반으로는 윈턴의 "Black Code", "Hot
House Flowers"라던가 브랜포드의 "I Heard You Twice First
Time" 등을 추천할 수 있다.
어쨌든 신전통주의가 근간이 되어 현재 컨템포러리 재즈계는
이렇게 과거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려는 쪽과 퓨전 재즈에 근
간을 둔 쪽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내
려는 쪽 등으로 구분된다.
우선 정통파로 말하면 조수아 레드맨을 위시한 일군의 신예들,
그러니까로이 하그로브, 니콜라스 페이턴 등 아주 많다.
그런 면에서 조수아의 "Wish", 로이의 "Family", 니콜라스의
"Nicholas Payton" 등의 음반들은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 하겠
다. 여기에 조 헨더슨이나 베티 카터와 같은 노장들도 합세했으
므로 이 움직임이 실질적으로 컨템포러리 재즈계의 대세이다..
쿨재즈
쿨 재즈"(Cool jazz)란 사전적 의미의 뜻인 "시원하다" 보다는
이곳에서 쓰인 개념은 "이성적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후 전쟁 중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팽배했던 긴장감이
완화되면서,미국사회에는 서부를 중심으로 백인적인 정서의 문화가
발달해 나간다.그리고 백인과 서부지역의 (LA를 중심) 지형적인 특
성, 따듯하고 온화한 기후와 수려한 경관등으로 인한 특유의 낙관적
이고 서정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운드는 종래의 흑인
들 중심의 비밥 사운드와는 정서적으로 많이 다르다. 여기에는 특히
클래식을 적극적으로 재즈에 수용하는 면에서부터 감상자 위주의 음
악으로 거듭나게 된다.
전통재즈는 비브라토를 수반한 강렬한 음향과 더불어 춤과 연결되
는 율동적인 리듬이 필수적(스윙)이었으며,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그러나
쿨 "시대에 접어 들면서 재즈는 정반대되는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재즈 음악계에는 정식으로 음악수업을
받은 음악가들이 점점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2차 세계대전시 화염
에 휩쌓인 유럽을 피해 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탈출러시
이룬 것도 이같은 경향을 부채질했다.
여기에는 데이브루벡의 스승인 다리우스 미요도 포함되있다) 이들
은 재즈에 클래식 음악기법인 화성법, 나아가서 12음 기법등을 결합
시키면서 재즈와 클래식의 접합을 시도하였고, 그들은 또한 재즈를
클래식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자신들의 활
동을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연미복을 입고 음악
회장에서 정식으로 격식을 차려 연주를 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추
구하는 음향은 비브라토가 없이 부드러우며, 자극이 없고, 서정미가
있는 현대적인 음향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드디어 재즈를 춤과 술과 혼합하여 생각하지 않고,
재즈를 조용히 앉아서 진지하게 감상하는 음악으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서 화성법, 대위법, 목조
성(Polytonal), 무조성주의 등을 차용하여 음악적 으로 수준이 한결
높아짐과 동시에 음회용 음악 즉 감상음악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쿨
재즈의 음향적 특색은 비브라토와 거친음색 절제되었으며 부드러운
음색과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완되어있어 매끄럽고 스마트한 느낌을
준다.
서정성과 함께 멜랑콜리한 표현이많고 낙천적이고 밝은 느낌을 준
다. 클래식적 음악형식 때문에 즉흥적인 면이 감소되었고,소규모(실
내악적)스타일이 많이 눈에띈다.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쿨재즈의 전
성시기는 1950년 경부터 1960 년 사이로 보여지며, 대표적인 음악가
로는 마일스 데이비스(Mi les Davis,트럼펫)를 기수로하여 리 코니
츠(Lee Konitz, 앨토-색소폰), 레니트리스타노 (Lennie Tristano,피
아노) 데이브 브루백(Dave Brubeck,피아노) 쳇 베이커(Chet Baker
트럼펫)그리고 모던 재즈 4중주단 (Modern Jazz Quartet) 등이 있
다.
보사노바
보사노바는 "접촉" 이라는 의미의 "Bossa" 와 "새로운"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Nova"된 합성어로 "새로운 물결(New Wave)"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사노바의 탄생은 브라질에서 비롯되었다. 재즈의 발생경로가
노동자와 빈민계층에서 였다면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부유층 및
백인들에게서 출발하였다. 브라질의 빈민계층과 중산층들이 삼바
리듬으로 즐겼던 때에, 이런 브라질 전통의 음색이 섞여진 같은
패턴의 반복음악이 보사노바(Bossa Nova)이다. 삼바가 그러하듯
보사노바도 단순한 화음으로 같은 패턴을 연주하면 가수들은 이에
반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조로 노래를 부른다.
상류층들은 브라질의 삼바열풍을 신분의 차이라는 이유로 멸시하고
이를 듣지 않았다. 그러나 신분적인 격차를 해소하는 또다른 형식의
음악이 필요했는데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변형한 것이 바로
보사노바(BOSSANOVA)였다. 보사노바는 전통적인 삼바 대신에
중ㆍ상류층들에게 음악 선택권을 준 셈이었다. 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작곡가 Antonio Carlos JobimㆍLuis Bonfa와 시인 vinicius
de moraes, 보사노바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
Joao Gilberto 등은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되는 Samba의 변형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경향’, Bossa Nova였다.
보사노바는 삼바(Samba)와 재즈(Jazz)을 골고루 넣어 고급스런
리듬과 화음으로 변형된 복합적 음악이다.
1958년 Jobim은 [Chega de Saudade]라는 Album으로,
1959년 Luis Bonfa는 영화 [Orfeu Negro]에 나오는
“Manha de Carnaval”라는 곡으로도 보사노바를 선보이게 되었다.
그후1964년 Jobim, Gilberto 부부와 함께 레코딩한
“Garota de Ipanema”로 보사노바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보사노바는 과히 열광적이었다. 삼바의 강한 리듬적 요소를 없애고,
보다 부드러운 화음과 감성을 사로 잡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곡은
부유층의 풍미에 어울리는 특색을 지녔지만, 이것이 세계적 음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브라질의 젊은 음악가들이 미국의
재즈요소인의 쿨재즈(Cool Jazz)와 비슷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사노바는 도시화의 자연스런 변화에서 브라질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이로 자리를 굳혔다.
대표적인 보사노바 음악가들로는 Baden Powell, Joao Gilberto,
Antonio Carlos Jobim, Stan Getz, Astrud Gilberto, Sade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일본의 Lisa Ono, T-Sqare와 Gal Costa,
Goya & Carmina , 김현철, 윤상 등의 앨범도 보사노바의 분위기를
풍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밥뉴올리언즈에서 시카고를 거쳐 30년대 중반이 되자 째즈의 창조 활
동은 뉴욕이 주요 무대가 된다. 오닉스, 페이머스 도어, 스리 듀시스
등등 유명 클럽이 북적댔던 뉴욕 52번 가의 이른바 "스윙 스트리트"
는아트 테이텀, 콜맨 호킨스 그리고 빌리 할리데이 등 빅 스타들이
밤마다 출연하는 째즈 천국으로서 융성을 과시하고 있었다.
한편, 1938년에는 인기 절정의 베니 굿맨이 클래식의 전당 카네기
홀에서 최초로 째즈 공연을 했고, 같은 해와 이듬해 카네기 홀에서는
"흑인영가에서 스윙까지"라는 제목의 획기적인 째즈 콘서트도 개최
했다.
"비밥" 내지 "밥"이라 부르는 째즈의 새로운 스타일이 뉴욕에서 태어
났던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그것의 온상은 할렘의 클럽 민튼즈 플레
이 하우스와 프론즈 등 심야의 잼 세션을 파는 뮤지션의 집합소였다.
원래 밴드 리더인 테디 테일 힐이 매니저로 있던 민튼즈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좋았다. 하우스 밴드는 드러머인 케니 클락을
리더격으로 해서 셀로니어스 몽크, 닉 헨튼, 조 가이 등의 멤버였다.
멀지 않아 민튼즈에는 굿맨 악단의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 그리고
52번 가에서 활약하고 있던 돈 바이어스같은 뮤지션들이 속속 가담
하게 된다. 반면 몬런즈에는 제이 맥샨 악단 출신의 알토 색소폰의
천재 찰리 파커가 출입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20대의 신예 흑인 뮤지
션들뿐이었다.
불행히도 이 중요한 시기에 연주자 노동 조합의 음반 취입 파업이
일어났기 때문에 비밥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스타일적인 완성을 보
았는가를 증명하는 음악적 자료는 적다. 어쨋든 1944년, 디트로이트
에서 뉴욕으로 진출한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는 52번 가에서 파커-
길레스피 퀸텟의 연주를 듣고 "혁명"이 일어났음을 느꼈다고 한다.
행크의 증언이다.
"그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의 째즈를 "비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음악적으로는 그때까지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어떤 스타일과도 달
리 대단히 복잡했다. 멜로디나 화음 진행도 눈이 돌 정도로 어지럽고
하모니의 해석도 고도로 풍부한 지식이 필요했다. 리듬도 스윙의
비트와는 반대로 악센트가 2박과 4박에 주어져 있었다. 게다가 오프
비트 까지 병행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파커와 길레스피 그리
고 버드 파웰의 악기를 연주하는 절대적인 기교였다. 그들은 눈부신
테크닉으로 빠른 템포의 불같은 격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연주하
는 일이나 듣는 일 모두 대단히 스테미너를 필요로 하는 음악으로
확실히 나같은 촌뜨기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음악이었다.
"
음반 취입 파업이 끝나자 사보이와 다이얼이라는 새로운 레이블이
째즈의 새로운 운동 비밥(bebop)을 일제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이미 비밥은 음악적인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1945년에 녹음된 찰리 파커의 , 등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밥의 불멸의 성전이자 모던 째즈의 뿌
리로서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시대는 바로 찰리파커
(혹은 bird)로 대표되는 시대다. 그는 연주라는 측면에서 빠른 속도
에서 많은 코드진행과 뛰어난 즉흥연주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때부터 째즈는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
다.
이제부터는 진짜 감상이라는 측면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까지도 연주되는 많은 곡들이 이때 작곡되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
할까. 많은 평론가들이 말하듯이 파커는 어떤곡에서는 베토벤보
다도 뛰어난선율을 들려주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들어보신는 것
이 좋을 듯 하다.
비밥은 각광을 받으면서 갑자기 밝은 대로에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스윙계열의 뮤지션은 이해를 하지 못했으며, 일부 평론가들은 째즈로
인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비밥을 지지했던 사람은 젊은 뮤지션과 약
간의 베테랑뮤지션 (콜맨 호킨스가 대표적)들이었다. 따라서 큰 레
코드 회사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비밥 전성기의 중요한 음반 취입이
길드와 사보이같은 독립 레이블에 남겨진 것은 비밥이 당시로서는
너무나 전위적이었기 때문이다.
카운트 베이시와 빌리 할리데이를 발굴했던 명 프로듀서 존 하몬드
조차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혐오스러운 프레이즈의 연속으로 밖에 받
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불루스
블루스는 19세기 중엽에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대중가곡을
말하지만 음악적 특질과 형식은 20세기에 재즈 색깔의 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의 연가처럼 가난한 집단의 소박한 민요에서
시작됐다. 흑인들의 속박된 삶과 백인들의 무시와 폭력으로 얼룩진
인종차별에도 그들만의 세상에서 버티면서 이끌어오던 음악이 블루
스라는 이유로 블루스라는 단어를 경시하던 그시대의 배경이 더욱
블루스를 끊임없이 지키게 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블루스의 시조인 포크블루스, 컨트리블루스 등은 노예해방을 노래하
던 19세기에서 파생된 형식이다.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과 슬픔, 고뇌 등을 노래한 블루스는 기타
연주에서 느껴지는 gloomy 한 요소가 많다. 그래서 더욱 블루스는
솔직한 표현에 맞는 가사와 선율구조가 흑인 특유의 특징을 가졌다
고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블루스는 형식에 있어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
고 3행시의 12마디의 형식으로 맞추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블루스는
즉흥적으로 자신의 괴로움이나 슬픔 등을 가사화하여 부르는 경우도
많았기에 흑인적 요소가 강한 블루스 스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블루스"라는 노래로 처음으로 불리워진 것은 1920년대에 핸디
(W.C. Handy)를 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앨범
[Memphis Blues]을 시작으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St.Louis Blues], [Joe Turner Blues], [Beale Street Blues]등으
로 블루스의 스타일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블루스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이 가지고 있던 팝의
요소와 영국의 모던 음악에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블루스는 클래식
블루스의 Clara, Trixie, 컨트리 혹은 델타 블루스로 분류되는 Blind
Lemon Jefferson, Robert Johnson, 어번 블루스, 리듬 앤 블루스인
Fats Domino, Little Richard 등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리듬 앤 블루스는 soul적인 느낌을
잘살리던 흑인가수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팝가수들에게도 큰영향을
주었고, 아시아지역의 음악에도 그만큼 영향력을 끼쳤다.
애시드재즈
70년대 펑키(Funky)음악은 이후의 디스코 음악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댄스음악의 기초적인 형태를 형성하였다. 또한 Funky는 R&B,
소울, 라틴 등의 음악적 요소가 합쳐져 새로운 사조의 퓨전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AcidJazz(애시드 재즈)는 재즈와 훵크(Funk)를 바탕으로 힙합이나
소울, 라틴, 테크노 등 현재 유행하는 갖가지 음악적 요소들을
적절히 믹스한 후 그 위에 다이내믹한 리듬과 멜로디 라인을 덧입혀
탄생시킨 감각적 이며 역동적인 음악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재즈적인 어프로치와 훵키(Funk)한 그루브(Groove)가 중심이 되는
퓨전(Fusion)형태의 음악이다.
애시드 재즈(Acid Jazz)란 단어는 80년대 후반 영국의 DJ였던
Giles Peterson(현재는 레코드 제작자)이 장난삼아 한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는 애시드 재즈란 용어를 그의 프로그램에서
소울, 재즈, 재즈 힙합, 70년대 소울 클래식, 재즈 훵크와 그러한
음악들에서 영향을 받은 새로운 음악들을 설명하면서 사용했다.
"사람들이 재즈라고 부르는 음악들... 고전적인 의미로
지미 스미스, 리 모건, 웨스 몽고메리 등의 앨범같은 음악과
아직 광범위하게 재즈라고 정의받지 못하는 영국출신의
Street-Soul의 The Brand New Heavies나 Raw Stylus,
Young Disciples 같은 펑키밴드 음악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미남 프론트 맨 JK가 이끄는 자미로콰이
(Jamiroquai),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의 원곡
(Canteloop Island) 를 샘플링해 큰 인기를 모았던 어스3(Us3),
영국을 대표하는 애시드 재즈 그룹 브랜드 뉴 헤비스
(the Brand New Heavies) 덴마크의 Ridin" Thumb(라이딩 썸),
노르웨이 출신의 3인조 D"Sound (디"사운드)등 있으며,
국내에서는 롤러 코스터(Roller Coster)가 애시드 재즈 스타일의
앨범을 홈 레코딩 방식으로 제작, 발표해 좋은 평을 얻은바 있다.
이밖에도 프랙탈(Fractal),불독맨션의 이한철, 기타리스트
"한상원",프로젝트 그룹 "낯선 사람들" 등이 애시드 재즈적인
성향이 강한 Funk음악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들로 꼽힌다.
애시드 재즈의 본질은 Funky (펑키)에 있으며, 다양한 리듬과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 랩(Rap) 까지 동반된 펑키음악의
현대적인 형태라고 말할수 가 있다.
아카펠라
아카펠라는 "예배당 또는 성당식으로" "성당을 위하여" "교회적으로
" 노래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6세기경 성당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이 처음의 아카펠라 형식은
교회에서 시작된, 다소 종교적이고 클래시컬한 무반주 합창 음악의
스타일이었다. 교회용 합창곡인 팔레스트리나의 무반주 폴리포니
양식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의 아카펠라의 의미는 교회음악에
한하지 않고 무반주 합창곡을 가리키는 말로 포괄화 되어졌다.
현대 음악의 풍부한 화음 사운드와 리드미컬한 비트감에 비하면
아카펠라는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화음과 멜로디, 그리고
비트감에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멜로디와 화음으로 구성된 형식은 퍼커션과 스켓(Scat)과
같은 재즈 애드립 기법 등의 사용으로 Doo Wop과 Vocal 장르의
하나인 Nostalgia 형태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것이 곧 아카펠라의
기초인 목소리를 발전시킨 형식이라 할수 있다.
오늘날 아카펠라는 아카펠라 형식의 예배송(Worship Song)
보다 음악 장르로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그룹가수 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현재 대중음악에서 아카펠라 장르의 특징을 살려 악기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로 시스템적 프로듀싱을 사용한 목소리를 변형시켜
효과적 음색전달과 풍부한 사운드 메이크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악기가 사용되더라도 목소리가 위주로 되는 Vacal 장르의
여러형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아카펠라로 편곡되어지는 주류의 장르 음악이나 리듬 형태에 따라
크게 팝아카펠라, 재즈아카펠라, 클래식 아카펠라, 퓨전아카펠라,
두왑(Doo Wap) 등으로 나눌수 있다.
현란한 전자음악과 춤이 각광받는 요즘의 대중음악사이에서 신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 만으로 만들어 내는
아카펠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아카펠라 아티스트는 The Bobs, Da Vinci"s Notebook,
King"s Singers, The House Jacks, Jubalaires, Swingle Singers,
The Nylons, The Persuasions, Real Group, The Roches,
Rockapella, Singers Unlimited, Sweet Honey in the Rock,
Take 6, Voicebox 등과 국내그룹으로 솔리스트(The Solist),
인공위성을 들 수 있다.
아시아의 경우 Tritone, Baby Boo, Gospeller, Rag Fair 등의 일본
아카펠라 그룹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야크(YaKppella)와 모노(Mono), 기가힛츠 등의 동호회의 활성화
로 아카펠라의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인디 아카펠라 그룹으로 대중들에게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는
보이쳐(Voiture), 애드알콜(Add Alcohol), 빠다나라(Bbadanara),
삼정톤, 무그르(MGGR), 모노 프리모, 메이저세븐(Maj7),
프로펠라(Propella), 필싱어즈(The Feel Singers), 잉어즈(The
Ingers), 랩소디, 미완성, A.M.P, 아프리카, 아카플로라 등이 한국
아카펠라의 발전을 높여가고 있다.
가스펠
가스펠은 "복음"을 뜻하지만 90년대초 미국 흑인 사이에서 불려진
종교가요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흑인영가와 다르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신약성서의 복음에 관계된 내용을 지니고 있다.
가스펠 장르는 보통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스펠"이라는 단어가 축복예배를 위해 부르던
남아메리카 많은 흑인계들의 음악이라고 단언한다. 가스펠은 두왑
(doo-wop)그룹들의 청사진인 컴보스(combos)같은 재즈악단의
전통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된 형태이다. 이밖에 또다른 형태의
가스펠은 주를 향한 서정적이면서도 전통적 컨츄리 음악인 듯한
컨츄리 가스펠 (country gospel)과 아직 컨츄리 가스펠과 같이
폭넓게 자리잡은 스타일 전형을 이루지 못한 블루스 가스펠
(blues gospel)이 있다.
이 세가지 음악형태는 70년대 말에 탄생한 컨템포러리 가스펠
(contemporary gospel)과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70년대에 C.C.M은 다른 음악분야의 소프트
락 (soft rock)과 팝(Pop)등의 장르를 접목하였다. 이후 80년대에서
90대의 C.C.M은 가장 파퓰러한 가스펠의 스타일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스타일은 외국에서 나누어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그 기준과 시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가스펠과 블루스가
혼합된 형태를 초기 가스펠의 기원으로 보이기엔 재즈적 요소가
스탠다드와 소울적인 부분으로 다시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분명한것은 블루스나 재즈가 가스펠은 아니다.
고전적 가스펠(Traditional Gospel)은 1920년대 초에 시작되었으며
남부의 기원음악이며 스케일이 거대하면서 소울적인 성가형태의
가스펠을 말한다.
가스펠 성가(Gospel Choir)는 고전 가스펠, 블랙 가스펠, 컴템포러리
가스펠속에 유행하는 한형태이다. 대부분의 곡이 소울적이며 강한
음색의 가스펠 성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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